10년 걸려 완성한 '아라리오 미술 타운'…난 예술이란 꿈에 베팅하는 사업가

입력 2023-03-16 16:48   수정 2023-04-28 09:50


2013년 11월 서울 원서동 공간(空間) 사옥이 경매에 나오자 국내 문화예술계는 크게 술렁였다. 공간 사옥은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로 1971년 지어진 현대건축 걸작이자 역사에 남을 전시·공연이 여럿 열린 ‘문화 예술의 성지’. 그 건물이 공간그룹의 부도로 인해 시작가 150억원에 매물로 나온 것이다.

‘저곳을 미술관으로 만들고 싶다.’ 기업가이자 갤러리스트, 화가이자 컬렉터인 김창일 아라리오 회장(72·사진)은 이렇게 생각했다. 쉽진 않았다. 여러 대기업이 건물에 눈독을 들이고 있어서였다. 첫 번째 경매는 유찰됐다. 경매 시작가를 일단 내린 뒤 경합을 시작하자는 게 기업들 생각이었다. 김 회장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좀 더 기다렸으면 값을 더 깎을 수도 있었겠지만, 1시간30분 고민한 끝에 ‘내가 사겠다’고 연락을 넣었습니다. 버림받은 이 아름다운 건물에 꼭 예술을 통해 생명과 영혼을 주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김 회장이 사들인 공간 사옥은 2014년 9월 아라리오뮤지엄으로 탈바꿈했다. 김 회장의 ‘마지막 퍼즐’이 완성된 건 8년여 뒤인 지난달 1일이다. 2021년 사들인 아라리오뮤지엄 옆 건물에 아라리오갤러리를 재개관하면서다.

“내 꿈을 위한 인생의 반환점을 돈 사건이었어요. 혈이 뚫린 거죠. 기분이 너무 좋아 갤러리 재개관 행사 때 들국화의 ‘그것만이 내 세상’을 크게 불렀습니다.” 성공한 기업인이자 세계적인 컬렉터로 유명한 그가 고작 갤러리 위치를 옮긴 정도로 왜 그렇게까지 기뻐했던 걸까.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괴짜 소년, 지역 ‘거물 기업인’ 된 사연
김 회장은 충남 천안에서 천안종합버스터미널과 신세계백화점 천안아산점, CGV 천안터미널점, 식음료점 등을 운영하는 기업인이다. 여러 갤러리와 미술관을 운영하는 갤러리스트, 국내외 유명 작가 작품을 4000여 점 보유한 세계적인 컬렉터이기도 하다. 작가로서의 예명은 씨킴. 제주 탑동의 버려진 폐건물을 개조해 미술관 등 문화공간으로 바꾸면서 ‘동네 재생의 마법사’라는 별명도 얻었다. 그야말로 ‘종합 미술인’이다.

가볍게 첫 질문을 던졌다. “사업으로 번 돈 대부분을 미술사업에 쏟아붓는다고 들었습니다. 힘들지 않으신가요.” 그리고 이 질문은 마지막 질문이 됐다. 김 회장이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두 시간 동안 답변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처음 듣기 시작할 때는 당황스러웠지만, 다 듣고 나니 비로소 큰 그림이 그려졌다.

정리하면 이렇다. 김 회장은 “28세까지 내 일상은 고통이었다”고 말문을 뗐다. “어린 시절부터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늘 혼자 엉뚱한 생각을 했어요. 저 꽃의 색은 왜 다채로울까, 저 나무는 왜 흔들릴까 같은 궁금증이 자꾸 들었지요. 선생님 질문에 엉뚱하게 답을 하니 학교에선 열등생 취급을 받았고, 젊은 시절 방황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도 엉뚱한 생각에 빠지는 버릇은 여전합니다. 그래서 운전도 1978년 면허를 딴 뒤 딱 한 번 해보고 그만뒀어요. 운전하다 딴생각을 하면 사고가 나니까요.”

그의 인생이 바뀐 건 1979년. 대학(경희대 경영학과) 졸업 후 월 300만원을 내고 천안역 앞의 적자 버스터미널을 관리하기 시작했을 때다. 그는 임대한 매점을 모두 직영 체제로 바꿔 1년 만에 억대 이익을 냈다. 1989년에는 250억원을 투자해 6만6000㎡에 천안버스터미널을 세우고 백화점, 영화관, 식음료점 등을 갖춘 복합시설로 만들어 대성공을 거뒀다. 복합시설이라는 개념 자체가 한국에 없었던 때다.
“예술은 내 꿈, 돈 벌어서 계속 쏟아부을 것”

김 회장은 “투자할 땐 모두 ‘미쳤다’고 했지만, 예술 덕분에 이런 발상을 떠올리고 밀어붙일 수 있었다”고 했다. 그는 사업을 시작하고 몇 달 후부터 미술품 수집에 빠져들었다. 서울 인사동에서 뭔가에 이끌린 듯 남농 허건, 청전 이상범의 작품을 산 게 시작이었다. 이후 그는 틈날 때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미술품을 사들이고 부자들을 만났다. 이 과정에서 라이프스타일을 보는 눈이 트였고, 복합시설의 가능성을 봤다. 20대 중·후반까지 그를 괴롭히던 ‘예술적 상상’이 성공 동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김 회장은 사업에서 번 돈 대부분을 미술 관련 사업에 쏟아부었다. 서울 천안 제주에 막대한 돈을 써가며 갤러리와 미술관, 공공시설을 지었다.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시각(미술)은 물론 청각(음악) 미각(음식점) 후각(커피향 등 향기) 촉각 등 오감으로 전달하는 게 제 삶의 목표입니다. 여러 어려움을 뚫고 아라리오갤러리 건물을 사들인 것도, 바로 옆 건물에 고급 레스토랑과 커피점을 입점시킨 것도, 제가 직접 작품 활동을 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그때서야 첫 질문에 대한 대답이 비로소 나왔다.

“힘들진 않아요. 돈을 벌거나 사회공헌을 위한 사업이 아니라, 제 꿈을 위한 일이니까 당연히 돈을 써야지요. 다만 계속 사업을 이어나가려면 돈을 벌어야 합니다. 다행히 저는 사치품이나 집을 꾸미는 것,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엔 관심이 없습니다.”

그는 제주 아라리오로드처럼 버려진 건물이나 거리를 살리는 도시 재생사업을 계속해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제주도에 자신이 꿈꾸는 ‘숲속 미술관’을 지을 계획도 있다고 했다. 젊은 작가들에게 제공하는 작업공간과 전시공간을 늘리고, 중국 상하이지점을 계속 키워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오랫동안 손해를 봤지만 상하이지점을 계속 유지하고 있어요. 누군가는 한국 미술을 중국에 알리는 역할을 해야 하잖아요.”

인터뷰 중에도 갤러리엔 관람객이 끊이지 않았다. 김 회장이 웃으며 말했다. “공간과 거리를 바꿔 내가 생각하는 예술을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것, 이것이 내가 원하는 겁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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